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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 : 한일의 불교교류와 고려대장경
강연 내용
대장경은 경・율・론을 모은 것 또는 그 총서를 뜻한다. 그러나 경전의 단순한 수집이나 편성이 아니고 일정한 기준으로 통제, 정비된 것이다. 물론 처음부터 엄중한 기준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점차적으로 이러한 기준이 정비되어 삼장으로 분류되게 되었다.
중국 송宋 대에 개보칙판대자영開寶勅版大藏經이 완성되자 그 영향을 받아 현종 대에 대장경 조성이 칙명으로 시작된다. 대장경의 조성 동기는 불력을 빌고 당시 고려에 침구했던 거란병을 퇴치하려고 한 것이다. 이 조성사업은 현종 2년(1011)에 시작되고 동 20년(1029)에 일단 완료되고 1,076부 5,048권이 완성되었다. 이것은 일반적으로 초조대장경이라 불린다.
초조대장경 경판은 부인사에 옮겨졌고 몽고군 침입에 의해 고종 19년(1232)에 소실되었다. 그러나 불력을 빌어 외적 침입으로부터 국가안전을 기원하기 위해 대장경을 다시 조성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 사업은 국가와 민중의 힘을 모아 진행된 것이다. 또한 수기에 의한 대장경 교정 작업의 개시되었다. 이와 같은 준비 기간을 거쳐 경판을 새기는 과정에 들어간다.
16년을 거쳐 재조대장경의 경판이 고종 38년(1251)에 완성되고 같은 해 9월에 왕이 백관을 거느리고 서문 밖의 대장경 판당에 행행行幸하였다. 이 대장경을 일반적으로 재조대장경이라 불리고 초조대장경과 구별되어 있다. 이 경판은 완성 당시 강화도에 있었으나 고려 말, 조선 초기에 해인사로 옮겨지고 현재에 이르고 있다.
14세기 후반 한국과 일본의 역사적인 교섭이 시작되는데 그 150년 동안 풍부한 문물의 교류가 이루어진다. 이 경 한일의 불교 교류에서 특히 일본 쪽은 대장경을 빈번하게 요청하였다. 이 시대 한일교류 속에서 일본으로 전래된 대장경은 40장부터 50장이 이른다. 이들 중에는 초조대장경, 재조대장경, 그리고 중국판 대장경도 포함된다.
재조대장경은 개보칙판대자영, 거란대장경, 초조대장경 등을 교감하고 내용면도 우수한 대장경이라는 평가도 받고 있다. 이와 같은 평가를 내린 사람은 닌쵸忍澂라는 일본 승려이다. 닌쵸는 황벽판대장경黃檗版大藏經에 수록되어 있는 대승본생심지관경大乗本生心地観經을 읽다가 뜻을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있었고, 그 원인이 황벽판대장경 자체의 와탈에 있다는 것을 밝혀내고 5년을 걸쳐 건인사建仁寺 소장 재조대장경과 대교하였다.
또한 일본에서 근대가 되면 금속활자를 이용한 새로운 대장경이 간행된다. 즉 대일본교정대장경大日本校訂大藏經과 대정신수대장경大正新脩大藏經 등이 그것이다, 이들 대장경은 고려대장경을 저본으로 삼고 간행되었는데 특히 대정신수대장경은 불교 연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세계 공통의 텍스트가 되어 있다..
이와 같이 14세기부터 시작된 한일 불교 교류에 있어서 고려대장경이 다한 역할은 크다. 그래서 본 강연에서는 고려대장경의 조성과 내용 교감, 그리고 인쇄 등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한다. 특히 일본에 남아 있는 고려대장경을 조사해 보면 그 인쇄 동기를 알 수 있는 묵서들이 보인다. 또한 인쇄 과정을 알 수 있는 묵서도 보인다. 이런 묵서들은 기존 사료에 보이지 않는 귀중한 사료이기도 하고 이 묵서들을 분석하여 인쇄 동기나 인쇄 과정도 살펴보자 한다.
다음에 14세기부터 시작된 한국과 일본의 불교 교류에서 40장부터 50장정도 대장경이 일본에 전래되었다. 일본 쪽은 왜 대장경을 많이 요청했는지, 그것을 어떻게 이용했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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